...는 사실 한 달쯤 전에 언박싱했지만.

언박싱의 꽃말은 애플 제품은 개봉하기 직전이 가장 두근 거려(앱등 앱등)

iPad Air 4세대가 내 인생 최초 아이패드인 건 사실이다.

아이폰 3G 시절부터 지금까지 쭉 아이폰만을 써온 내가 아패에 관심이 없었을 리 없다. 그런데 왜 이제껏 안 샀냐면,

이패드 구매를 위한 3단계 의사 결정 과정 by 임필구(2020)

1.얄팍한 구매욕구: 굳이 필요하지 않지만 써보고 싶다
2.고민: 중고와 신품 사이에서 가격과 스펙 무한 고민
3.시간 경과: 결정 못 하는 사이에 다음 세대 발표(다시 1로 돌아가기)

그렇게 어언 백 년이란 시간이 흐르고야 말았는데...
발표 때부터 꽤 평이 좋았던 아패 에어는 어쩐지 훅 지르고야 말았다. 재택 근무 기간을 견딘 나에게 주는 셀프 보상 겸 셀프 생선 겸... 뭐...
그냥 지르고 싶었다.

문서작업 하기 편할 것 같고, 어쩐지 그림도 그릴 수 있을 것 같고 게임도 하고 싶고.
그래서 질렀다. 스카이블루.
가전 제품은 일단 살 때 최고 스펙으로 사야한다는 지론에 따라 256기가로.(사소한 클릭 실수도 있었습니다..)

슼블루 256기가
또 다시 오조오억년 고민한 케이스
오 오 영롱한 슼블루
리코 내요메



그래서 아이 패드 사놓으니까 쓰나요?

결론적으로는 생각 보다 잘 쓰고 있습니다.

하루 시간대별 주 용도
-아침: 아침 먹으면서 로이터 동영상 뉴스 보기
-점심: 점심시간에 드라마/애니 보기
-퇴근후: 아이패드로 글쓰기
-주말: 스피커 연결해서 음악 듣기, 논문 보기

예상 외로 게임은 아직 하나도 안 깔았다. 이건 폰이 세상에서 잊혀진 Xs Max이나 아직 한창 현역 스펙이기도 하고, 게임은 폰으로 돌리면서 아패로 음악 깔고 딴 짓 하면 기분이가 좋크든요...
Zoom같은 온라인 회의앱을 까니까 굳이 놋북 안 켜도 돼서 좋기도 하고. 아직 본격적으로 만화를 보진 않았는데 화면이 크니까 이걸로 만화 보면 짱이겠지...? (웹툰은 폰에 최적화 되어 폰으로도 충분한데, 출판 형식 만화는 Xs Max 화면 크기로도 많이 아쉽다.)

가장 큰 변화는 글쓰기를 다시 시작하게 됐다는 것 아닐까?

글쓰기 100 프로젝트를 시작하고 나서 퇴근길에 키워드 생각, 전철에서 폰으로 아이클라우드에 쓰기 시작->집에 와서 아이패드로 완성시켜서 티스토리 업로드
가 루틴이 되었다.

물론 아패를 들이기 전에도 우리 집에는 데탑이 있고 일단 문서 작업 가능한 고대의 노트북이 있고 핸드폰도 있어서 충분히 글을 쓸 수 있는 환경이었지만, 글을 쓰게 되지는 않았다. 소비를 안 하고도 행동 변화를 일으킬 수 있었으면 정말 좋았겠지만 나는 그게 안 되었기 때문에(그게 가능하신 분들, 정말 존경합니다... 일 벌일 때 일단 장비부터 들이고보는 전형적인 한국인 드림) 아깝지 않다. ...아아니 아주 조금은 아깝지만 -이 돈이면 냉장고를 큰 걸로 바꿀 수 있었는데- 그 무엇보다 값진 변화였다고 생각한다.

옛날에 사놓은 롤리 키보드가 크기가 딱 맞아서 언뜻 보면 세트 같다

흠이 있다면 내 기준으로는 조금 무거워서 외출할 때 들고다니기에는 가방이 확 무거워지는 느낌이다.

아트 직군 트친 분의 조언으로 페이퍼라이크 필름을 붙였는데 생선으로 챙긴 펜슬과 더불어 나에게는 아직 미지의 영역이지만 아이 패드의 이 하얀 화면 안에 무한한 가능성이 있다는 사실 만으로도 자꾸 아이패드를 열어 보고 싶어진다.

“혈압이 상당히…높네요. 젊은 사람에게는 무척 드문데…”
올해 내 나이는 보통 한국 사람들이 좋은 시절은 다 갔다고 본격적으로 자조하는 것이 허락될 나이, 그러나 의학적으로는 아직 ‘젊다’고 하는 나이.
그날을 원점으로 나의 환자 생활이 시작되었다.

두 달에 걸친 재택근무가 끝나갈 무렵, 머릿속이 울리는 것 같은 심한 두통이 일주일 넘게 계속되어 동네의 신경외과에 갔다. 몇가지 간단한 뇌기능 검사를 하고도 이렇다 할 원인을 알 수 없었고 혈압을 재었을 뿐이었다. 왼팔 위쪽에 두른 벨트가 팔이 터지지 않을까 걱정될 만큼 꽉 조인다.
액정에 표시된 숫자는 수축기 190대, 이완기 120대.
일반인인 내가 보아도 이건 높다. 꽤.
“음… 물론 오늘 처음 온 병원이라 긴장해서 높게 나왔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래도, 이건 너무 높아요. 가족력도 있으시고…”
나이든 남자 의사가 자그마한 수첩을 하나 건넸다.
“혈압계를 하나 사세요. 아마존에서 사천엔 정도면 살 수 있어요. 손목식이 아니라 꼭 상완식, 이렇게 팔 윗부분으로 재는 거. 그게 가장 정확해요. 이 혈압수첩에 이주 정도 아침 저녁으로 기록을 해보세요. 두통은 일단 한방약을 처방할테니 그걸 먹으며 상태를 보죠.”

왜 하필 나에게 이런 일이….
실은 몇년 전부터 나쁜 예감은 있었다. 언제부터였던가. 건강검진에서 혈압을 잴 때 의료스태프의 의아한 눈길을 받으며 혈압을 다시 한 번 재기 시작했던 것이. 특히 작년 건강검진에서는 혈압이 높게 나와서, 고혈압이 의심되니 주의하라는 결과가 나왔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재택 근무를 시작한 후의 불규칙한 생활.
낮시간 집중력이 떨어진 바람에 낮에는 불안하게 놀다가 새벽에 업무를 몰아서 했다. 일이 몰리는 시기에는 며칠씩 밤을 새다시피 작업을 한 시기도 있었다. 몰려서 집중적으로 작업을 하다가 30분씩 눈을 붙였다 깨어날 때면 심장이 미친듯이 뛰곤 했다. 이러다 설마 나 죽는 건 아니겠지 생각한 적도 여러 번. 그것 때문일까? 무엇이 트리거가 되었을까? 대부분의 증상이 그렇듯 정확한 원인이 무엇인지는 알 수 없다. 아무렴 어때. 당장 지금 내 혈압이 높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병원에서 돌아오자마자 혈압 낮추는 법을 검색해봤다. 네이버 지식인과 의학백과의 초록색 화면을 왔다 갔다 하며 고혈압의 원인, 증상에 대한 얕은 지식을 구했다.

의사로부터 고혈압 가능성을 선고 받은 그 순간, 이거 그냥 치료하지 않고 두면 천천히 죽을 수 있겠네 하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왜, 흔히 그러지 않는가. 고혈압은 조용한 살인자라고.
그러나 검색 결과가 자학적인 사고에 초를 쳤다. 고혈압은 심장에 부담을 준다. 그런데 심장만이 아니라 신장에도 무리가 간다고 한다.
심장은 몰라도 신장… 으… 신장에 문제가 생기면 엄청 고통스럽다던데. 오래 살고 싶은 마음은 추호도 없지만 고통스럽게 살다 죽기는 싫다. 아마존에서 순순히 혈압계를 검색하기로 한다.

내 눈에는 가격만 조금씩 다를 뿐 다 그게 그거인 듯 했다. 명확히 구별되는 기능은 앱 연동 기능인데 만엔 이상. 뭐가 이렇게 비싸? 막연히 오므론이 좋을 것 같지만 그것도 근거는 없다. 이런 의료 기구를 언제 사봤어야 말이지.
나는 현대인 답게 제일 먼저 트위터에 접속하여 조언을 구했다.

-트식인 여러분 혹시 가정용 혈압계 추천해주실 분 있나요 상완식이요

손목식 혈압계를 하나 추천 받았으나, 아쉽게도 상완식에 대한 정보는 얻을 수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나의 트친들은 대부분 20대에서 40대로 구성되어 있었다. 즉, 보통은 혈압 문제를 겪을 일이 없는 연령대라는 뜻이다.
그 다음은 한국에 계신 창조주에게 카톡으로 도움을 청했다.

-엄마 집에서 혈압계 뭐 써
-응/병원가서재/조절잘되고있대/^~^
(*띄어쓰기 하는 법을 모르셔서 이렇게 쓰십니다)

이럴수가…. 고혈압 환자력 4년차면서 가정용 혈압계가 없다고? 나중에 하나 보내드려야겠다.(의사가 말한 나의 가족력은 창조주이다)
고심 끝에 오므론에서 나온 제품 중 가장 저렴한 제품을 주문했다. 다행히 나를 괴롭히던 두통에는 한방약이 어느 정도 차도가 있었다. 네이버에서 혈압 낮추는 법을 검색하자 하루 30분 이상 유산소 운동이 효과가 있다는 것을 보고 본투비 귀차니스트인 내가 하루 30분 워킹을 시작했다. 그것으로 어느 정도 할 일을 했다고 생각했으나, 큰 착각이었다. 혈압계가 도착한 다음이 진짜 시작이었다.
아침에 일어나서, 밤에 자기 전에 각 두 번씩 혈압을 재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하긴, 일년 반 정도 전부터 다른 약을 복용하고 있는데, 매일 같은 시간에 복용하는 습관을 들이는 것이 무척이나 힘들었다.
반드시 매일 같은 시간이라는 제약은 없다고 하더라도 나처럼 숨쉬기 운동만 하며 살아온 사람에게 어느 날 갑자기 아침 루틴, 밤 루틴이 추가되는 것이다.
게다가 병원에서 기기로 쓱 재는 것과 달리 집에서 혈압계로 혈압을 잴 때는 의외로 제약 조건이 많았다.
아침에는 반드시 식사 전일 것. 요의를 느끼는 상태가 아닐 것. 너무 춥지도 덥지도 않은 환경일 것. 등받이 의자에 등을 기대고 앉아 두 발을 땅에 닿게 앉을 것. 그 상태로 1~2분 휴식을 취한 후일 것. 왼팔 중간부터 위로 1~2cm지점에 벨트를 두르고 팔은 상완의 중간에 심장 위치가 오게 하는 자세로 릴랙스할 것. 재는 중에는 말을 하지 않을 것. 무슨 경국대전도 아니고….

그러나 그런 온갖 수고로움을 이기고, 놀랍게도 나는 의사가 준 이주간의 미션을 클리어할 수 있었다.
가장 큰 원동력은 두려움이었다. 혈압계가 가리키는 너무 높은 숫자. 좋아진 듯 하다가 다시 엄습하는, 곧잘 겪던 기압으로 인한 긴장성 두통과는 명확히 다른 종류의 둔통. 그것은 비유하자면 마치 머릿속 혈액이 갈 곳을 잃고 흘러 넘치는 것 같았다.

이주 후, 나는 혈압수첩을 들고 다시 병원을 찾았다.
“잘 기록하셨네요. 고혈압에는 두 종류가 있는데, 다른 질환 때문에 고혈압이 된 경우와 명확히 원인을 알 수 없는 경우가 있습니다.”
다른 질환이란, 갑상샘 항진증이나 황원병(膠原病). 40대 이상 여성에게 많은 자가면역 질환의 일종이다. 주변에 투병하는 지인이 몇 있어, 의사가 설명하지 않아도 나는 그 의미를 층분히 알았다.
“결과가 이주 후에 나오니, 그 동안에는 두 종류의 고혈압에 다 쓸 수 있는 가장 가벼운 약을 먹으면서 상태를 보죠.”
아직 마음의 준비가 안 됐는데, 강압제를 처방 받았다. 약국에 들러 복약지도를 받으며 이제 나는 부정할 수 없는 진짜 고혈압 환자라는 것을 다시 실감했다.
좋게 생각하자.
아침 저녁으로 혈압 재는 것에 비하면 매일 정해진 시간에 약을 먹는 것 정도는 누워서 떡 먹기였다.

또 다시 이주 후.
수첩에 적힌 숫자는 오르락 내리락 하며 아주 조금이지만 전체적으로는 내려갔고, 혈액 검사 결과가 나왔다. 정상치를 조금 벗어난 수치가 몇 가지 있으나 걱정할 정도는 아니고, 의사 소견에 따르면 ‘자가면역 이상 질환 등 기타 질환의 가능성은 인정되지 않았다’.
야호.
다행히 고혈압 환자일 뿐, 다른 더 무서운 병의 환자는 아니라고 한다.

“본격적으로 치료를 시작합시다. 이 주마다 병원에 오세요. 조금씩 약 용량을 늘려갈 겁니다. 지금 시기에 시작하면 아마 가을 쯤에는 정상 범위 내로 돌아올 수 있을 겠네요. 아, 소금 섭취는 가급적 줄이시고…”
야호. 내 병은 어쩌면 완치가 가능하다.
야호. 더더군다나 흔한 병이기에 약값도 무척 싸다. 이주치에 560엔 정도.

야호할 일은 사실 훨씬 많다. 우연히 두통 잘 보는 병원을 검색했더니 동네에 우연하게도 뇌신경외과와 고혈압 전문의를 가진 의사가 있는 의원이 도보 10분 거리에 있을 확률을 구하시오.
야호(삼창).

물론 앞으로의 치료 과정은 이제껏 겪은 것처럼 순탄치만은 않을 지도 모른다.
나는 고혈압 환자가 되고 나서 그 전에는 모르던 새로운 세상을 본다. 새로운 삶을 산다.
그것은 아침 저녁으로 약 10분의 번거로운 루틴이 추가된 삶의 방식이다. 이주마다 병원에 통원하고 휴약 기간도 없이 매일 꾸준히 약을 먹는 삶이다. 자유롭게 고르던 식료품 중에서 조용히 염분이 많은 식품과 그레이프 후르츠를 제외하는 삶이다.(약제가 혈관에 오래 머무르게 해서 강압제 약효가 과해질 위험이 있다.) 날씨를 보고 워킹을 할 수 있는지 체크한다. 날이 맑으면 회사에 다녀온 후에, 혹은 퇴근길에 워킹을 갈 수 있게 스케줄을 조정한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갑자기 찾아온 ‘위드 코로나’ 시대에, 전인류가 모두 함께 새로운 삶의 방식에 적응 중이다. 내 것이 조금(?) 더 특별 에디션일뿐. 약간 나쁜 소식이라면 코비드-19 바이러스는 혈관계 기저 질환자에게 더 치명적이라고 한다.
어쩔 수 있나. 평범한 회사원인 나라는 개인은 어차피 코로나의 위험을 컨트롤 할 수 없다. 하지만 나의 혈압이라면 어느 정도 컨트롤할 수 있다.

미리 맞는 매가 낫다는 말이 있다. 극단적인 이야기지만 우리는 어차피 언젠가 모두 노인이 될 것이고 지금은 상상도 하기 싫은 온갖 노환에도 시달리게 될 것이다. 남들 다 맞는 매를 나는 조금 더 일찍 맞는다고 생각하자.
백세 시대인 지금 아주 먼 길을 가게 될 것이다. 희망컨대 잠시, 어쩌면 조금 오래 겪을 환자 생활을 최대한 슬기롭게 보내려고 한다. 가능한 선에서 말이다.

땡! 이 일러스트는 틀렸습니다. 일반적으로는 왼팔로 잽니다.


*올해 7월에 여성 모임에서 썼던 글을 발굴하여 올립니다.
생각해보면 글쓰기 프로젝트 100을 하는데 원동력이 된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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