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 100 프로젝트는 글감의 다양성을 담보하기 위해 하루는 옛날 일을, 하루는 요새 일을 주로 적기로 했습니다. 어제 막 그렇게 정했습니다. 당분간은 지키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일본어에 아마노쟈쿠(天邪鬼)라는 단어가 있다. 단적으로 번역하면 청개구리. 이러라고 하면 굳이 굳이 꼭 저러는 사람이다. 남들이 바람풍하면 일부러라도 바담풍을 하는 사람이다. 타고난 뇌구조가 달라서일까? 엄마 뱃속에 있을 때 특정 성호르몬의 영향을 많이 받아서 일까? 원인은 모르지만 아무튼간에, 겉으로는 부모님 선생님이 하라는 대로 하면서 속으로는 그 반대를 가는 아이, 그게 바로 나였다. 중학교 때는 전교에서 노는 아이가 그럴리 없다는 대한민국 선생님들의 흔한 편견을 이용해서 몰래 손톱을 기르고 귀를 n개 뚫기도 했다.(당시 JRock에 심취한 왜색이 짙은 중학생이었습니다...)

태초에 반발이 있었다. 그리고 반발은 힘이 된다.
생각해보면 관성적으로 수행해온 일들 중 그 첫 시작은 반발이었던 경우가 종종 있다.
트위터 계정에서 몇 번 고백한 적이 있는데 꽤 오랜 기간 나는 노다메와 같은 이유로 원피스 팡인이었다. 한 장만 입으면 위 아래 코디 끝, 액세서리도 필요 없고, 코디하기 편하고, 쓱 입기 편하고, 빨리 마르고...
예상치 못한 것은 팬데믹 시대에 장기 재택 근무를 하면서 찾아온 건강 악화였다. 맨다리가 시리다는 감각을 알게 된 나는 자동으로 원피스 팡인을 졸업하게 되었다. 하지만 옷장 안에는 지금도 아까워서 버리지 못한 온갖 종류의 원피스로 가득하다. 결혼식용 포멀 원피스, 입고 가면 옷가게 점원들의 주목을 한몸에 받는 드레시한 좌우 비대칭 어시메트리 원피스, 캐주얼과 포멀 사이의 면접 원피스, 하늘하늘 잠자리 날개 같은 여름 원피스, 귀인에게 나눔 받은 스포티한 데님 원피스, 그 외에도 아무튼, 원피스.
그런데 잠깐. 생각해보면 어린 시절의 나는 치마를 싫어하는 어린이였다. 활동적인 놀이도 좋아했다. 대학생 시절에도 딱히 원피스만 즐겨입지는 않았다. 나는 무엇을 계기로 이렇게 원피스 팡인이 되었나? 곰곰이 생각해보니 태초의 반발을 낳은 에피소드가 있었다.
때는 초등학교 2학년, 장래희망을 발표하고 난 순간이었다. 장래 대통령이 되어 우리 나라를 좋은 나라로 만들겠다는 맹랑한 발표는 조금 과장을 보태 담임 선생님의 폭풍 칭찬과 베이비부머 어린이들로 가득한 교실에서 우레와 같은 박수를 받기에 충분했다. 그후로 나의 장래희망은 열 두 번도 더 바뀌었지만(대통령->만화가->캐릭터 디자이너...), 여기까지는 흔히 있는 훈훈한 어린 시절 이야기이다. 문제적 순간은 그 다음이었다. 자신감을 만땅으로 충전하고 단상을 내려올 때, 맨 앞자리에 앉은 여자 어린이 둘이 나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 들렸다.
“쟤는 맨날 바지만 입어.” “치마 입고 온 적 한 번도 없을 걸?”
딱히 욕을 한 것도 아닌데 이상하게 그 한 마디는 내 가슴 속에 송곳처럼 콕 박혀 있었다. 꽤 오랜 세월이 흘렀는데도 영화의 한 장면처럼 그날의 기억은 무척 생생하다.
하지만 나는 더 이상 아홉살 어린이가 아니고, 성장했고, 나이를 먹었다. 이제는 모친이 나를 낳으셨을 때 나이 보다 내가 연상이다.
시작이 반발이라면, 이제는 졸업하기에도 충분한 시간일지도 모른다.

(저)반발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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